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책을 고를 때다. 어떤 종류의 책을 몇 권이나 들고 가야 할 것인가. 늘 고민이다. 일주일 여행 가면 일곱 권을, 한 달 여행 가면 서른 권의 책을 가방에 챙겨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의 책은 있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 중 기차에서 읽을 책이 없다면, 비행기가 몇 시간 동안 연착되고 있는 공항에서 읽을 책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심심하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도스토예프스키에서부터 닉 혼비에 이르기까지 각종 상황에 어울리는 책을 어떻게든 가방에 쑤셔 넣어야 마음이 편안했다.
2008년 10월 나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작가 해외 체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스웨덴으로 떠났다. 일정은 3개월이었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서른 권? 백 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의 크기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내가 거기에서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고민하다 결국 가방에다 한 권의 책만 넣었다. 꼭 읽어야 할 특별한 책이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도 아니었다.
3개월 동안이라도 책에서 벗어나 보자는 마음이었다. 책을 읽기보다는 도시를 구경하고, 글자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롭게 만난 도시의 날씨와 공기에 집중하자는 마음이었다.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에서 읽을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너무너무 간절해지면, 내가 직접 쓰면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었다. 준비한 책 한 권은 비행기에서 반을 읽었고, 도착하고 며칠 만에 끝을 냈다. 첫 한 달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했으므로 책을 읽기보다는 신문이나 표지판이나 약도를 보는 일이 더 많았다. 내가 머물던 건물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매일 아침 사람들이 호숫가를 달렸다. 나도 따라 달려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마트에 가서 빵과 프로슈토, 우유와 채소를 사서 아침을 먹었다. 오후 2시가 되면 사람들은 햇볕을 쬐러 양지바른 곳으로 모였다. 나도 따라 가서 햇볕을 쬐었다. 개들도 햇볕을 쬐었다. 스웨덴에서 겨울을 지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햇볕이 나는 시간은 아주 짧다. 저녁이 괴롭다. 한 달 반이 지나자 뭔가 읽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글을 읽고 싶으면 내가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글을 읽고 싶었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글을 읽지 못하자 외로워졌다.
나는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인터내셔널 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에 한국의 책을 모아둔 곳이 있었다. 백 권이나 될까 싶은, 책꽂이 두 칸 정도 분량의 한국 책이 있었다. 대부분 유명한 책이었고 읽은 책이 더 많았다. 나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상 ․ 하권을 빌렸다. 침대에 엎드려 <칼의 노래>를 읽었다. 추운 겨울, 스웨덴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는 한국말은 달콤했다. 너무 달콤해서 자꾸만 녹아 내려가는 글자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문득 창 밖을 내다보면 불 켜진 창문이 많았다. 기나긴 겨울밤, 스웨덴 사람들도 나처럼 무언가를 읽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자꾸만 녹는 달콤한 문장을 핥으면서,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무언가를 읽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이야기들을 누군가 이렇게 읽어준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긴 겨울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웃고 웃으면서, 마음을 졸였다가 안도하면서 내 글을 읽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하나의 외로움이 치유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스웨덴의 겨울 창 밖의 수많은 창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작가로 살게 된 것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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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번역원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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