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김중혁 선생 by vonnegut

올해는 뜻 깊은 해다. 학고 김중혁 선생(39세, 소설가)의 대학입학 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생의 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고란 학식(學)이 높다(高) 하여 붙여진 것이 아니라 학사경고의 줄임말로, 대학을 다니는 내내 학사경고에 시달렸던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선생의 영어 이름은 F4로, 이 역시 꽃처럼 아름다운 네 명의 학생 중 한 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F학점을 한 해 네 번까지 기록했던 그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해 둔 것이다.

선생의 대학시절 하이라이트는 2학년 1학기였다. 여섯 개의 수업 중 세 개는 F학점, 나머지 세 개는 D학점을 맞으며 평점 0.8로 학점사에 큰 획을 그으셨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학점인가 시력인가’ 논란이 일었으며 (오히려 선생의 시력은 양쪽 모두 1.5였다고) 선생의 부모는 그를 속히 군대로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선생은 꿋꿋하시어 F학점을 한 번 더 기록하고 결국 F4를 완성하시고서야 홀연히 군으로 가시었다. 이후 선생은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후 현재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중혁 선생을 소개하겠다. 모두 큰 박수로 맞아주길 바란다.


몇 해 전 한 대학에 특강을 나갔다. 친하게 지내는 그 학교 선생님 한분이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말인즉슨 “요즘 학생들이 너무 부지런해서 무섭다”는 것이었다. 부지런한 게 왜 무서워요. 네가 몰라서 그래, 진짜 무서워. 매일 출석하고, 지각도 안하고, 리포트 내는 거 한 번도 안 빠지고, 영어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하고, 모든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데 안 무섭겠냐. 그러고 보니 무섭기도 하겠다. 20년 전에 학교 다닐 때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긴 했지만 한두 명 정도뿐이었으니 무서울 리 없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렇다면 정말 무섭겠다. 이유는 안다. 학점과 취업과 유학과 기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산재해 있으니 공부 안하고는 못 배기겠지. 뒤떨어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솔직히 이해는 안 간다.

공부 열심히 안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학점과 아이큐는 높은 게 좋고, 등수와 방어율은 낮은 게 좋다. 공부 안한 거 후회할 때도 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할 걸, 특히 영어 회화 열심히 할 걸, 후회한다. 책 열심히 더 읽을 걸, 반성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지 않은 걸,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지 않은 걸, 아쉬워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학 시절 캠퍼스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시간, 정신줄을 놓은 채 목숨 걸고 놀던 시간, 그 완벽한 진공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싱싱해서 쉽게 상하기 때문에 가끔은 진공 포장하여 외부의 대기로부터 격리시켜 주어야 한다. 20년이 지났지만 그때 진공 포장해 둔 나의 뇌 일부분은 아주 싱싱하다. 학사경고와 바꾼 싱싱한 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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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을 계속 보고 있으니 어지럽다는 항의가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옛날 글 포스팅. ㅋㅋ

아마도, 대학생을 위한 <씨네21> 에 썼던 글인듯. 어쩌자고 이런 글을....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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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펭도의 느낌 2009/10/28 19:18 #

    “학점인가 시력인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학고 김중혁 선생... more

덧글

  • suriya 2009/10/20 13:59 # 삭제 답글

    제목의 '학고' 를 읽자마자 학사경고를 떠올렸네요. ^^;;
  • 군달 2009/10/20 16:05 # 답글

    바쁘시죠, 됐어요, 쳇.
  • 앨리스 2009/10/20 21:18 # 답글

    하하하, 그래도 재미있는 걸요 뭐.
  • 취한배 2009/10/20 21:42 # 답글

    아핫 남의 얘기 같지 않아요 하하하하;;; 그렇지만 제 뇌는 싱싱하지 못해서...OTL
  • Orca 2009/10/20 23:35 # 답글

    왜요. 야구공 계속 보고 있으려니까 기분 괜찮던데요.ㅋㅋㅋㅋㅋㅋ
    저는 이미 학교 성적에 손 놓은지 오래입니다.ㅋㅋㅋㅋ
  • 초록장미 2009/10/22 08:23 # 삭제 답글

    김중혁씨,
    팬이됐어요
    처음부터가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히히
    괜히 그런 말을 하고 싶어지는 날~ 에헤라디야
  • 편지 2009/10/23 12:50 # 삭제 답글

    왜 이렇게 가을이
    재미가 없지, 하던
    찰나, 학고 김중혁
    선생 등장. ^^
    총총.
  • 빨간 양파 2009/10/23 21:41 # 삭제 답글

    오늘 저 여러번 생각하게 하시네요 작가님....진공...진공...으음...
  • 2009/10/28 04:23 # 삭제 답글

    진심으로 감동 받았다는!

    역시 김중혁 샘은 완벽한 사람이예요.
  • starryst 2009/11/04 02:20 # 답글

    정말인가요? 정말 그 진공을 감싸안아줄 날이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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